7월 31일로 2,000일이 되었습니다.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본문 공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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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라는 영화가 있다. 무섭지도 않을 정도로, 정말 질리게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는 영화였다. 폰 트리에가 내놓은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호불호는 심하게 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독에서 배우, 시놉시스, 하다못해 제목까지 무엇 하나 혹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지만, 극장에서 보았다간 집에 제대로 돌아오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에 – 나는 내 정신이 어떤 것에 어떻게 취약한지 아주 잘 안다 -상영 당시에는 극장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 포스터만 봐도 땅이 물컹거리면서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공기가 당밀처럼 뻑뻑하게 땀구멍을 채워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대신 DVD를 샀다. 제일 빨리 배송해줄 수 있다는 판매처를 찾아서 해외 사이트를 뒤지고, 추가 요금을 내고, 발매일 전부터 온갖 소란을 떨어댄 끝에 주문한 DVD가 도착한 것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맨손으로는 뜯지도 못할 두툼한 포장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것을 방에서, 혼자, 문을 닫고 틀어박힌 채로 꾸역꾸역 보았다. 정신의 바닥을 밟게 하는 영화였다. 전원을 끄면 까맣게 변할 화면이 두려워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옷장에 들어가고 싶은 먹먹함과 당장 태양을 보러 달려나가야 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니까, 죽도록 내 취향이었다는 소리다.
맥주를 두 병 정도 더 비운 뒤, 나는 멜랑콜리아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는 않을 영화’ 칸, 도니 다코와 올 댓 재즈 사이에 꽂아두었다.
그 선반에 꽂아둔 영화는 침대에 누워서 지핵까지 가라앉고 싶다거나, 뇌수가 바작바작 말라붙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바닥을 걷어차기 위해서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고전 명작(선셋 대로라거나) 옆에 B급 스플래터가 늘어선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는 했다. 사사즈카 씨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개중 몇 편 정도는 옆에 앉아 버텨주기도 했다.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내 DVD를 보는 것은 우리만의 월례 행사 비슷한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 취향과 필요를 함께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 마지막으로 본 게 악마의 등뼈였던가.
그 칸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은 것은 영화가 현실로 넘어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우리에게도 멜랑콜리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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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는 영화 속 멜랑콜리아의 반 정도. 대충 빚은 경단처럼 못생기고 창백한 덩어리였다. 얼룩진 표면이 꼭 울부짖는 얼굴처럼 보였다. 뉴스 속보를 보면서 아, 우울증이라는 건 확실히 이쪽에 가깝겠네, 하고 어딘가 엇나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충돌할 것이라느니, 아니라느니,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느니. 온갖 의견이 쏟아져 나왔지만 와 닿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일단 가능성이라는 게 있어야 고민이든 저항이든 해볼 것이 아닌가. 내가 뭔가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하찮았고, 지구는 작았으며, 그것은 거대했기에.
정말이지, 징글맞게도 커다란 별이었다. 정식 명칭은 다섯 자리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멜랑콜리아라고 불렀다. 아마 나만의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외화된 우울은 일정하고 현실적인 속도로, 우주 저편으로부터 비스듬히 지구를 따라왔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종말이 저렇게 크고 못나고 음울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을. 너무 그럴싸해서 오히려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 싫었다.
싫었지만, 무작정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고,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일을 결정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가 적었으니까. 계속하거나, 그만두거나.
해서 나는 살겠다고 했고, 사사즈카 씨는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 태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방향은 같았다. 그 방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끝까지, 끝을 향해.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 있기로 약속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라는 인사 뒤로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식사를 했고, 나란히 서서 이를 닦았으며, 말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 함께 영화를 보던 시간이었다. 그건 쓰레기통 속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비우지도 더 채워넣지도 않은 그 모습 그대로 방구석을 점거한 그 시간을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냥 그렇게.
세상도 딱 그렇게 굴러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 의외였다. 단체로 갑작스러운 사형선고를 받은 꼴이니 세상이 뒤집힐 줄만 알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쳐 날뛰겠거니 했었다. 그게 나는 아닐지라도.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평화로웠다는 것은 아니다. 퀴블러-로스의 5단계를 대충대충 거치며 칩거하거나, 종교에 귀의하거나,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사람들이 없잖아 있었다. 주변이 온통 어수선했다. 아래층 사람이 화단에 반쯤 파묻힌 채 발견된 날에는 화장실에서 전날 저녁과 재회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뒤틀려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크게 보았을 때 인류는 조용했다. 지나치다 싶게 차분했다. 희망이라거나 이성을 잃지 않고 어쩌고 하는 미사여구를 붙여도 괜찮았을 것이다. 위안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위협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내일 죽는다고 해서 오늘 굶을 수는 없다는 것 같은 태도로.
그렇게 느릿느릿하게나마 굴러가던 일상이 멈춘 건 나의 멜랑콜리아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을 시기였다. 상담도 항우울제도 기대할 수 없는 우울증이 하늘에 펼쳐졌다. 누구도 더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사사즈카 씨는 출근을 그만두었다. 위험하니까, 라고 하면서. 주어가 빠졌지만 이해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나는 당신이 내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당신은 돌아왔을 때 내가 없을 것을 걱정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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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을 닫았다. 시계도 몽땅 집어던져 버렸다. 내친김에 커튼도 뜯어냈다. 투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커튼보다는 암막에 가까운 그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샀던 물건이었다. 우리는 둘 다 생활이 불규칙했고, 대낮이 되어야 눈을 붙일 수 있는 날도 더러 있었으며, 한술 더 떠 나는 조금이라도 빛이 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두근거림이라고는 한 톨조차 찾을 수 없는 사정이 참 우리다웠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을 얘기지만.
휑하니 드러난 베란다에는 멸망만이 가득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우리 둘만의 시간은 거의 모두 내가 뜯어낸, 시커멓고 묵직한 천 덩어리로 분리된 공간에 존재했으며, 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몇 개월 분량의 공포가 풀려나기 시작했다.
에리. 담배 냄새가 거의 남지 않은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익숙한 체온이 팔과 등을 감싸왔다.
그리고 나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